아키타 성과 데와국 관계 역사 연표

647년: 누타리 성책 축조, 사쿠코(柵戸: 방어를 위해 주변 주민들을 징발하는 기관) 설치.
648년: 이와후네 성책 축조, 사쿠코(柵戸) 설치
658년:아베노히라후장군, 배 180척을 이끌고 오가,노시로의 에미시를 정벌
701년: 다이호 율령(다이호 원년의 법령)제정.
708년: 에치고국 데와군을 세우는 것을 청하여 허락 받음,
709년: 여러 나라에 명령을 해 병기를 데와성곽(성벽,)으로 이동
710년: 헤조쿄로 수도이전
712년: 데와국을 설치.데와군 외에 무쓰 국의 최상, 오키타마 2개의 군을 데와국에 포함시킴.
714년: 오와리, 우에노, 에치젠, 에치고 4국의 백성, 200가구를 데와 사쿠코(柵戸)로 함
715년: 시나노, 에치젠, 우에노, 에치고4국의 백성 100가구를 데와국으로 옮김

717년: 시나노, 우에노, 에치젠, 에치고4국의 백성,100가구를 데와국에 배치
720년: 모로노 쿠라오 등 6인을 풍속 시찰을 위해 말갈(靺鞨)국에 파견시켜 감시함 일본서기성립
724년: 이때부터 무쓰 국 타카성축을 쌓는다.
727년 : 발해의 사신이 데와국 도착(발해의 사신 방일 처음)
733년 : 데와책(성)를 아키타마을 타카시미즈에 옮겨 설치. 또 오카치성(현재의 요코테)에 관청을 세움 (‘속일본기’)
737년: 오노노 아즈마비토, 무쓰 국으로부터 데와성으로 가는 직로를 개통하기위해 오가치군을 정벌할 것을 청함.
739년: 제 2회 발해 사신이 데와국에 도착
746년: 발해, 철리의 사람 1100여명이 방일했지만 데와국에 두고 돌려보냄
757년: 불효, 불공, 불우, 불순자를 무쓰 국 모노 성, 데와국 오가치에 둠. 백성을 데와오가치 마을의 사쿠코로 이동
759년 : 천황의 명령으로 무쓰 국 모노성, 데와국오카치성이 만들어졌다. 요코가와, 오가치, 스케카와 등에 파발를 두었다. 사카히가시하치카쿠니,에치젠,노토,에치고등의 나라의 부랑자 2000명을 오카치사쿠코로 하여,또 관동7개국에서 보내오는 군사물품을 모노 성,오카치 성의 2성에 비축했다.
760년 : 데와 성곽이 이 시기부터 아키타성(阿支太城:秋田城)이 되었다(개칭되었다)(‘대일본 고문서’). 대역 죄인, 노비를 해방하고 오카치성곽에 배치.데와모리종 5위오노츠쿠라(나라시대의 5위 이하의 귀족) , 데와스케 6위 상백제왕 삼충이 한 단계 승진.
771년 : 발해사신이 데와국의 조구치 노시로항에 도착
775년: 데와국이 삼년 동안 병사를 진압할 병사를 증가시킬 것을 청하고, 군사요충지를 진압하고, 국부(국가관청)의 이전을 요청. 천황의 명령에 의해 사가미, 무사시, 우에노, 시모츠케등의 병사를 발전시킴.
777년: 데와 국의 에미시의 반역으로 관군은 고전함
779년: 발해, 철리 사람 359명이 입국하여, 데와국에 체재했음
780년: 데와국진적 장군 (군 계급은 하나) 아베 이에마로, 아키타 성의 함락에 대해 지시를 요구함.이에 대해 국사 한사람으로서 아키타 성, 유리성을 보수할 것을 명함
794년: 헤안쿄로 도읍을 옮김(平安京天都)
795년: 발해사신이 지리파촌 마을에 표착해 에미시에게 습격당하면 데와국이 보고함.
797년: 사카우에다무라마로 에미시의 대장군이 됨.’속일본기’ 성립
802년: 사카노우에 다무라마로를 파견해 무쓰국 이사와성을 짓게 함. 데와 국 오가치성의 군수품으로 에치고국에서 쌀, 사도국보다 소금을 보내게 함. 데와 국에서 도적과 사적으로 교역하는 것을 금지함.
804년 : 데와 국의 청원으로 아키타 성 제도를 멈추고 군제도로 함.
811년 : 무쓰와 데와 양국의 병사 26,000명을 보내 오랑캐를 정복할 것을 청하고, 허락 받음

830년: 아키타 지방 대지진 피해 심각, 사천왕사 건물과 16척의 불상이 무너짐(‘유취국사’).
878년 3월 29일 : 후슈의 반란으로 아키타 성이 습격 당한다.강교의 난이 일어남(‘삼대실록’)
878년 4월 4일 : 데와국 아키타 성의 전황을 보고하여 무쓰 국의 도움을 청함. 이 날 천황의 명령으로 무쓰 국에서 병사를 파병하여 도와줌.
878년 4월 28일 : 데와 국 전쟁 상황의 잘못을 보고 받음.이 날 천황의 명령으로 무쓰 국, 우에노 국, 시모노 국의 병사를 파병하고 이를 구원하게 함
878년 5월 4일 : 우중변(국정기관의 관리)에 후지와라노 야스노리를 데와국사로 하고 데와국에 파견시킴.
878년 6월 7일 : 데와국 4월의 전황을 보고 받음.역적, 아키타 강 이북을 장악 할 것을 청함. 아키타 성은 다시 대패. 갑옷과 투구 300벌, 군량미 700석, 침구 1000채, 말 1500마리를 도둑에게 빼앗김.
878년 6월 8일 : 오노 하루카제가 진압장군으로 임명되어 아키타성을 구하게 함.
878년 6월 16일 : 데와국 전황 악화와 무쓰 군 2000명 도망갔음을 보고함.무쓰 국에 명하여 2000명 재파견
878년 8월 4일 : 장군 오노하루카제는 무쓰를 지나 카즈노에 도착
878년 9월 5일 : 명령을 통해 , 도적의 쇠퇴를 틈타 조속히 평정을 명함.
878년 10월 12일 : 데와국, 2000명의 무쓰 군 도착 및 장군의 도착 사실을 보도하고, 항복한 반역자들의 취급에 관한 지시를 구험.
878년 10월 13 반역자를 형벌에 의해 처리하라고 명한다.
879년 1월 11일 : 데와 국내의 반역자의 형벌 및 쓰가루섬의 오랑캐의 입국을 보고함 .후지와라 야스노리 데와수장이 된다(‘후지와라 야스노리전’).
879년 3월 2일 : 데와 국의 청에 의해, 제국 군사의 해산을 허용하고, 데와 국을 위해 우에노, 시모쓰케 양군의 투구와 갑옷, 무기를 유치시킨다.
89년 6월 26일 : 데와 국 제국 군사의 해산 환향(환영)과 당국 예병의 편성을 보고함.데와수장 후지와라노 야스노리는 아키타 성을 이전보다 배로 재건(‘후지와라 야스노리전’).
915년 : 데와 국에서 화산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함(‘후소 약기’).
939년: 데와 국 포로에 의한 반란을 보고하고, 따라서 관부(관청)를 데와무쓰에 설치하고 군비를 정비해 병사를 징집시킴. 거듭해서 반란을 보고함
1000년: 아키타 성의 건설의 관부(관청)를 데와수장 후지와라노 요시마사에 맡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