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타케 요시마사 (1775~1815)
9대째 아키타 번주. 어린 시절의 이름은 나오마루, 이후 이름은 지로이고, 泰峨, 知足斎, 突故亭 등의 호가 있었다. 사타케 요시마사는 1785년에 11세의 나이에 번주가 되었는데, 그 후 간세이, 문화 시대가 요시마사 시대의 성숙기에 해당한다. 1790년에 번교(번의 학교)인 명덕관을 세워 아키타의 교육열을 단번에 높였다. 또 번 내의 10곳에 분교(=향교)를 건설해 지방 교육에도 힘썼으나 가쿠노다테 향교 “고도 서원”은 1793년에 개교했다. 번교와 관련된 학자로는 무라세 고테이, 야마모토 호쿠잔, 오쿠보 시부쓰 등이 있으며, 성하(城下)에서는 히토미 쇼우, 깃카와 고메이, 마스도 소슈, 나카야마 세이가, 구로사와 시죠, 히라모토 긴사이, 그리고 사토 노부히로, 히라타 아쓰타네 등, 아키타 번에서 문인, 유학자들이 꽃을 피운 시대였다. 요시마사는 요네자와의 우에스기 요잔, 기이의 도쿠가와 하루사다, 구마모토의 호소카와 시게카타와 함께 4인의 명군이라 불렸는데, 농촌, 광산, 임업, 학문의 네 가지를 골자로 한 그 정책은 뛰어난 가신의 건의도 힘을 보태 성공을 거둔다. 41세 사망. 天樹院殿泰峨凌雲大居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