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현민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하타하타(도루묵)를 언제부터 어획하기 시작했을까요? 15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아키타번주인 사타케씨가 아키타로 이동을 한 1597년~1599년의 3년간 오가, 노시로 방면으로부터 연어,대구,하타하타등의 수산물이 실려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쿠리야마 니죠 사카나 산요죠(산용장)] 아키타 가문 문서부분에). 그 양은 약 160태(약 21,600Kg)였습니다. 또 같은 아키타 가문의 문서인 [오다카 진스케 쇼야쿠 산요죠(산용장)]에는 하치모리 마을(현 핫포쵸)에는 하타하타의 배가 39척 있어, 1,550통을 상납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산용장에서 하타하타를 [신의 물고기]라는 한자로 기록하고, 하타하타로 부기를 하고 있어, 당시 벌써 하타하타라고 부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기록으로서는 이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만, 이시기에 이 정도의 양을 처음으로 어획이 가능하였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전부터 하타하타를 어획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어획을 했을까요? 에도 시대(1600년대~1800년대)의 어획 방법은 히키 아미(지비키 아미라고도 함), 코비키 아미, 나게 아미, 스쿠이 아미등 여러 방법이 있었습니다만, 이 중에서도 해저에서부터 끌어 올리는 히키 아미가 일반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을 이용한 수송 방법은 메이지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특히 농한기의 농가에게는 겨울철의 수입원이 되는 귀중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월을 맞이하기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매서운 눈 속을 헤치며 말을 이용해 밤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광경도 1905년 오우 본선이 개통되고, 다이쇼 시대(1912-1926)에는 동력선의 보급도 시작되어 점점 근대적인 방법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에도 오가지역이나 하치모리 지역에서는 전쟁후에 이를 때까지 마루키부네, 에구리부네(통나무로 만든 배)가 활약을 했었습니다. 이것은 연안의 암초부분등에서 사용하기 편하고 ,튼튼하며, 풍랑에 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는 먼 바다에 서식하는 하타하타를 어획하는 먼 바다 저인망 어업, 소형정 어업, 산란을 위해 접안한 하타하타를 어획하는 하타하타 소형 정치망 어업, 하타하타 그물망 어업등이 있어, 어획한 후 짧은 시간에 신선한 하타하타를 여러분들의 식탁까지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인망
저인망 어업은 금어기간(7월~8월)을 제외한 거의 1년동안으로, 시기에 맞춰 수심 80~400m까지의 부분에서 조업을 합니다. 11월에는 접안 앞에 모여드는 커다란 어군을 대상으로 조업을 합니다.
그물망
이름 그대로 그물망에 걸린 물고기를 어획하는 방법입니다. 적은 인원으로 조업 할 수 있고, 어구의 경비가 저렴한 것이 장점입니다만, 그물망에 걸린 하타하타를 빼내어야 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소형정치망(하타하타 건망)
접안군을 대상으로 한 어획 방법으로, 연안에서 거리 약 300m, 수심5m보다 낮은 곳에서 조업을 합니다.망이 소형이기 때문에 바다가 거칠어지면 바로 철수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해저 지형과 해초류 지역의 상황에 따라 어획량이 달라집니다. 최성기기 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업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