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시라이와 야키

1771년 9월, 소마 지역(후쿠시마 현)의 도인 마쓰모토 운시치가 처음으로 시라이와 마을 아타고 산의 산기슭(지금의 가쿠노다테 지역 시라이와)에 가마를 만들어 한 줄기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운시치는 약 2년 뒤 물러났지만, 그의 제자들이었던 기사부로들이 도자기 사업을 이어받았다. 아키타의 놀라울 정도의 지원과 기대를 받으며 발전한 시라이와 야키의 판로는 아키타 현 밖으로도 학장 되고, 이와 같은 계통의 요지(도자기, 도기 등을 굽던 자리)가 현내 각지에서 생겨나면서 명실공히 아키타를 대표하는 도자기가 되었다.
하지만 명치 유신 (1867년) 이후에는 현의 지원이 중단된 것 및 선진 지역에서 도자의 자유로운 유입 등으로 인한 시라이와 야키의 성업 부진으로 인해 1898년 무렵 그 연기는 모습을 감췄다.
메이지 시대를 기준으로 과거와 근년의 작품을 구별하기 위해 전자는 “고 시라이와 야키”, 후자는 “시라이와 야키” 라 부른다.